1961년 케네디 정권은 당시 쿠바에 위협을 느껴 카스트로 정권을 없앨 궁리를 했다. 케네디는 핵심참모들과 논의한 끝에 미국으로 망명한 반(反) 카스트로 쿠바인들을 훈련시킨 후 피그스만에 상륙시켜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겠다는 놀라운(?) 아이디어를 낸다. 결과는 참단 그 자체였다. 일단 침공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리고 미국은 어쩔 수 없이 1961년 당시로서는 엄청난 비용인 5,300만 달러를 배상했다. 무엇보다 세계의 중심으로 여겨졌던 미국은 멍청한 짓을 했다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글로벌 리더십에 치명타를 입었다.
미국의 이런 의도는 쿠바를 지원하고 있었던 소련을 자극했다. 그래서 소련은 쿠바에 워싱턴 DC와 뉴욕시를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 핵미사일을 설치하려고 했다. 1962년 10월 CIA로부터 정보를 받은 케네디는 10월 22일 핵전쟁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쿠바를 봉쇄한다. 소련은 당황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 기지 건설은 가속화되었고 핵무기를 탑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소련 선박이 쿠바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케네디는 소련에 최후의 담판을 시도했다. 미사일 기지를 폐쇄하지 않으면 미국은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을 천명한 것이다. 결국 이 시도는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미국은 약속대로 쿠바의 해안 봉쇄를 풀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쿠바 미사일 위기가 해소된 다음 미소관계가 좋아졌다는 사실이다. 피그스만 사건으로 실망감을 주었던 케네디 정권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는 최고의 선택으로 미국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2년도 안 된 사이에 케네디 정권의 의사결정 수준의 최악과 최선을 보여준 것이다.
이와 같은 케네디 정권의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선택 안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의사결정 수준이 현저하게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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